성철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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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3 (1967년 56세 ~ 1993년 82세)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04-28 05:42
조회
371
생애 3 (1967년 56세 ~ 1993년 82세)

1967년 (56세, 丁未)

월25일 제16회 임시중앙종회에서 해인사에 방장 체제의 해인총림 설치가 결의되면서,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되다.
방장 동안은 안거 때마다 보름과 말일에 상당법어를 하다,
동안거 결제 기간 중에 백일법문(百日法門)울 하다.




10월 보름과 말일 상당법어 진행 후에, 음력 11월3일(음12월4일)부터 시작하여, 상당법어를 하는 날과 성도재일 용맹정진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하다.
대략 이듬해 음력 1월20일(양2월18일)까지 진행되어 백일법문이라 한다.
12월15일 조계종 제17회 중앙종회에서, 조계종 종합수도원인 해인총림의 계획안과 승가대학
설치 계획안을 건의하다.    


1969년 (58세, 己酉)

10월 희찬스님이 월정사 대웅전을 중건하다.
이 무렵 청담스님 등과 춘천 성심여자대학을 방문하여, 다른 종교의 교육기관을 시찰하고 승가대학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다.

1976년 (65세 丙辰)

한국불교의 법맥이 출간되다.
대처 분규 끝에, 1962년3월22일에 제정된 대한불교조계종 종헌 제1조 “본 종은 신라 도의(道義)국사가 창수(創樹)한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국사의 중천을 거쳐
태고 보우국사의 제종포섭(諸宗包攝)으로서 조계종이라 공칭(公稱)하여 이후, 그 종맥이 면면
부절(綿綿不絶)한 것이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도의국사는 가지산문이고, 보조국사는 사굴산문이니 법맥이 상전(相傳)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다른 법맥을 같은 법맥으로 할 수 있느냐”
임제종의 종풍을 이어받은 조계종의 종조는 보조국사가 아니라 태고보우국사라는 주장을 펼치다.

1981년 (70세 辛酉)

1월20일 조계종 제6대 종정으로 취임하였으나 취임법회에는 나가지 않으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가 화제로 등장하다.

     종정수락 법어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竗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초파일 최초의 한글법어 “생명의 참모습”을 발표하다.
12월 스님의 사상을 대표하는 선문정로가 출간되다. 총 19장으로 구성되어, 각 경론의 구절을 초록하고 이어 대한 성철스님의 평석을 붙여 돈오돈수를 설파하다.

1982년 (71세, 壬戌)

1월 첫 한글신년법어 “만법이 불법”을 발표하다.
11월 또 하나의 대표작인 본지풍광이 출간되다. 해인사 방장으로 취임하신 1967년 동안거 결제법어부터, 1982년 하안거 결제법어까지 상당법문을 모은 법어집으로, 본칙 92칙과 낙수법어 (落穗法語) 9칙으로 구성되었다.

1986년(75세, 丙寅)

4월7일 종단이 안정되었으므로 종정을 사퇴한다는 사퇴서를 원로회의에 제출하다.
6월 돈오입도요문론 강설과 신심명. 증도가 강설이 출간되다.

1987년 (76세, 丁酉)

6월 자기를 바로 봅시다가 출간되다.
종정 취임 이후 출간 당시인 1987년 무렵까지, 대중적인 글들 위주의 법어 모음으로,
제1장 축복의 말씀은, 종정 취임 후에 발표하신 신년법어와, 초파일법어와, 종정법어를 모은 것이고,
제2장 가야산의 메아리는, 해인사 큰법당에서 불교진리를 쉽게 설명하신 법어 중, 해인지에 연재하였던 것을 정리하여 모은 것이며,
제3장 대담은, 종정으로 취임하신 후, 일간지 및 월간지에 인터뷰로 실린 것이고,
제4장 본지풍광 평석은, 본지풍광 가운데 다섯개의 법문, (제27칙, 제28칙, 제30칙, 제40칙,제44칙)을 골라 평석을 붙인 것이며,
제5장 해탈의 길은, 처음 출가한 승려들이 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두신 글들을 옮긴 것이다.

7월 백련불교문화재단을 설립하다.
11월 도서출판 장경각을 설립하여 선림고경총서 발간을 시작하게 되다.

1988년 (77세, 戊辰)

2월 돈황본 육조단결이 출간되다.

1991년 (80세, 辛未)

종정 임기가 만료되었으나, 종단의 분열로 종정을 추대하지 못하다.
분열 와중에 종정추대가 문중문제로 불거지자, 1월23일 종정직을 할 생각이 없다는 통고문을 보내다. 7월5일에 또한번 통고문을 보내다.
7월 8일 해인사에서 전국승려대표자 회의를 열고 원로회의에서 종정을 추대하고 개혁위원회를 구성하다. 세간법에 의한 송사는 종단법으로 엄단 등을 결의하고, 8월2일 제7대 종정으로 다시 스님을 추대하다.



1992년(81세, 壬申)

4월 백일법문 상.하 출간되다.

1993년(82세 癸酉)

9월21일 선림고경총서 완간 기념회를 열다.
10월7일 백련문화재단 주최로 해인사에서 ‘선종사에 있어서의 돈오돈수 사상의 위상과 의미’
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다.



11월4일 오전 7시30분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잘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입적하다. 세수 82세 법랍 58세


  平生歎狂男女群(평생기광남녀군)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 
  活焰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쾌벽산)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이후 전국각지와 해외동포 사이에서 추모 물결이 일다,
11월 10일 영결식 및 다비식을 봉행하여 11월12일 100여과에 이르는 사리를 수습하다.
1998년 11월 해인사 운양대에 사리탑을 봉안하다.
2001년 3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목곡리 생가터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겁외사를 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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